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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 ‘대한민국의 1등은 세계 1등’_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작성일
2024-06-18
조회수
3,876

세계 최고의 조선해양기술을 구현한 조선해양공학자 '조선업계 발명가 CEO’

제39회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 강연 ‘대한민국의 1등은 세계 1등’

 

3. [행사]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 민계식_1(민계식 유공자 메인 사진).jpg 이미지입니다.

 

민계식 과학기술유공자가 참여한 제39회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가 ‘대한민국의 1등은 세계 1등’이라는 주제로 지난 5월 9일 오후 4시 한림원회관 1층 라운지에서 40여명의 한림원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민계식 유공자는 독보적 조선해양기술개발로 대한민국을 조선해양 강국으로 이끈 공로로 지난 2017년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된 바 있다.

이날 행사에서 유장렬 유공자지원센터장은 “민계식 유공자는 학문적 기반과 산업계에서의 풍부한 실무 경험을 토대로 방대한 양의 설계 업무를 수행,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현대중공업을 세계적인 종합중공업 회사로 성장시켰습니다”며. “대한민국을 세계 제1위 조선강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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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계식 유공자는 조선업계 최고의 발명가로서, 수많은 연구와 발명을 했으며, 1994년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창립회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박사님은 힘센엔진, 발전시스템, 산업용 로봇 등을 개발하여 대한민국 기술 자립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현대중공업 재직 시절에는 '최후의 퇴근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연구개발에 매진하셨고, 연구실에서 홀로 새벽 2~3시까지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무려 논문 280편, 발명 및 특허 300여 개, 기술 보고서 90건 등의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CEO로 재임하던 10년 동안 현대중공업은 세계 일류 상품 보유를 34개까지 늘렸으며, 연평균 27.4% 성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유공자 선정 당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약 200회 이상 완주하셨다고 합니다."

3. [행사]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 민계식_2(민계식 마라톤).jpg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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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우리나라 조선산업을 세계 제1의 조선해양 산업으로 이끌었고, 이를 통해 꿈을 이루었습니다. 대기업을 경영하며 많은 발명과 신제품 개발로 회사를 성장시키는데 힘썼습니다. 목표는 대한민국 1등을 세계 1등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산업계에서 과학기술자이자 발명가로 활동하길 희망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나라가 바다로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선공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대학 진학 후 김재근 교수님을 만나 지도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우리나라 조선공업의 대부로, 그의 지도하에 간단한 소형 고속선과 8명이 탈 수 있는 보트를 만들었습니다. 주말과 휴일, 저녁시간을 이용해 만든 보트를 한강에서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열악한 산업환경을 개선하고자 결심하고 미국 유학 후 우리나라 산업을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품개발을 위해 학교 대신 산업계를 선택했습니다.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군대에서 유격부대장으로 복무하면서 GRE와 TOEFL을 준비해 다섯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MIT의 RA와 버클리의 펠로십 중, 사촌 형의 조언으로 버클리를 선택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막노동과 대형 트럭 운전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고, 리턴십 시스템스와 제노다이믹스에서 일한 후 MIT에서 공부를 마쳤습니다. 보잉에서 일하던 중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귀국하여 1978년 선박해양연구소에 취업했습니다.

당시 연구소는 초기 단계였고, 연구원들을 교육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요청으로 대우조선공업에 합류해 설계실에서 일했으나, 초기에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6시에 회의를 하며 바쁘게 지냈고, 본연의 업무와는 무관한 논의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던 중 노르웨이에서 온 브로커를 통해 북해용 셔틀탱커의 국제 입찰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국제 입찰에 참여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을 때 모두 놀랐지만, 저는 시도해봐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브로커와 전속 계약을 맺고, 오슬로에 지사를 설치하며 준비에 나섰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입찰 요구조건을 확장하고 설계도면을 작성한 결과, 1980년 1월 입찰하여 3월 16개 전 세계 회사 중 2차 리스트에 오르는 기적을 이뤘습니다.

발주처를 다니며 셔틀탱커의 사용목적과 요구사항을 파악한 후, 세계 최초로 선수에도 하역장치를 설치하는 설계를 제안했습니다. 기존 방식과 달리 대형 엔진과 중형 엔진을 기어로 연결해 하나의 축에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발주처는 싱글 엔진과 싱글 샤프트를 원했지만, 트윈 엔진을 사용해 효율을 10%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이를 확신하기 위해 독일의 기어 제작 회사와 협의해 가능성을 확인한 후 발주처를 다시 설득했습니다.

기어 제작 회사와 함께 설계를 완료하고 발주처에 제안한 결과, 우리의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추가인력을 확보해 설계 작업을 본격화했습니다. 선주들과의 협의를 통해 400페이지에 이르는 설계도면을 작성하고, 3월에 1차 리스트에 오른 7개 회사와의 경쟁을 거쳐 8월에 최종 입찰을 진행했습니다. 11월에 일본의 니폰 코캄스와 함께 최종 리스트에 오르며 80%의 성공을 이뤘습니다.

1981년 1월, 니폰 코캄스와 대우조선이 2차 리스트에 선정되었고, 가격을 제출해야 했습니다. 원가 3000만 불에 2000만 불을 더해 5000만 불로 제출하자는 제안을 했고, 발주처가 두 회사를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정보를 얻어 5500만 불로 제출했습니다. 최종 결과, 니폰 코캄스는 5550만 불, 대우조선은 5500만 불로 50만 불 차이로 우리가 선정되었습니다. 1983년 3월에 인도된 이 셔틀탱커는 발주처 사장의 부인 이름을 따서 야레나호로 명명되었고, 이 일은 기적으로 불렸습니다.

이란 혁명 후, 이란 해운공사 사장 일행이 중형 사무선 16척을 발주하려 일본을 방문한 후 한국에도 새 조선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배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고, 그들이 요청한 서류를 밤새 준비했습니다. 그들은 떠나지 않고 계속 자료를 요청해 매일 밤 작업을 이어갔고, 금요일에 모든 자료를 디자인 패키지로 정리해 전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성실함에 감탄하며 계약 의사를 밝히고 이란에 초청했습니다. 일주일간의 미팅 후 계약을 체결하며 또 하나의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1988년부터 김우중 회장은 저를 잠수함 사업에 참여시키려 했지만, 저는 미국에서의 서약으로 꺼렸습니다. 독일 출장 중 네 가지를 건의했습니다: 기술 개발, 핵심 역량 집중, 대우 이름으로 수출, 애프터 서비스 강화. 그러나 김우중 회장은 기술은 사오면 된다고 하고, 핵심 역량 집중과 대우 이름 수출, 애프터 서비스 강화 모두 귀찮고 불필요하다고 거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합연구소 설립을 제안했으나 역시 거절당해 실망과 낙담을 느꼈습니다.

정몽준 사장과는 10년씩 차이가 나는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끔 저를 불러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 그만 오시죠"라고 말했지만, 저는 항상 "장수가 전투 중에 어떻게 말을 갈아탑니까"라고 답했습니다. 어느 날 또 차 한잔 하자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명예회장 앞으로 데려가 "내일부터 근무하시는 겁니다"라고 권유했습니다. 난감했지만 명령을 어길 수 없어 다음 날 울산 현대중공업에 갔습니다.

현대에 가서 기술개발담당 부사장으로서 기술개발, 신기술, 신제품, 신사업 창출에 힘썼습니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새로운 개발을 회피했지만, 서양이나 일본 사람들이 개발한 사례를 들어 그들을 독려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는 세계 최고, 대한민국에서 1등은 세계 1등"을 외치며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1992년 찰스 왕세자 부부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현대중공업 연구소를 방문해 제가 연구성과를 설명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몇 가지 대표적인 연구성과를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초고속 수중 쌍동선의 추진날개는 양력과 추력을 모두 발생시켜 배의 속도를 높입니다. 중형 디지털 고유 모델인 '힘센엔진'은 명품 브랜드 네임을 갖추어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이동식 발전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방폭형 변압기의 폭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압기 내부 압력을 조절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안전성을 높였습니다.

 

3. [행사]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 민계식_3(민계식 유공자 강연 내용(쌍동선의 추진날개)).jpg 이미지입니다.

 

저는 '익스텐디드 스페리컬 타입'과 '맨브레인'이라는 고유 모델을 개발하여 LNG 운반선의 로열티 지불을 피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해저 파이프라인의 자동 용접기와 좁은 면적에서 효율적인 태양광 발전탑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액정판(LCD) 운반용 로봇, 평경수 살균 처리 장치, 이산화탄소 재연료화 플랜트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반지형 쌍수차 조력 발전장치와 초고속 수중익 쌍동선도 개발했습니다. 쌍동선은 시베리아 자원 개발을 추진하던 명예회장의 지시로, 울산에서 나오트카항까지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수선사업부가 적합한 설계도면을 찾지 못하자, 제가 직접 설계를 제안해 두 명의 동료와 함께 3개월 만에 완료했습니다.

시운전을 마친 후 울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20시간 만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젤 엔진 고유 모델 개발에 7년이 걸렸습니다. 중형 디젤 엔진 개발을 위해 예산과 인원을 계획해 사장의 결재를 받으려 했으나, 사장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정식 결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저는 소규모로 몰래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3. [행사]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 민계식_4(민계식 유공자 강연 내용(쌍동 여객선)).jpg 이미지입니다.


엔진기계사업본부의 도움으로 6개의 특허를 포함한 프로젝트를 시작해 밸브 개폐 방식, 연료 분사 시스템, 점화 시스템 등을 연구했습니다. 몰래 진행한 프로젝트는 5년 후 단기통 엔진을 완성했고, 새로 취임한 사장의 지원으로 1992년 시작한 프로젝트가 1998년 완성되었습니다. 1년간 구동 테스트를 통해 제품 출시 준비를 마쳤으나, 보수적인 조선해운계는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고, 조선사업본부에서도 이 엔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조선사업본부장의 반대로 난감해하던 중 독일 하파그로이드 사장에게 '힘센 엔진'을 6개월간 무료로 사용해보도록 제안했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이후 모든 배에 장착되었습니다. '힘센 엔진'은 전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한 적도 있으며, 현재는 28%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공 덕분에 파생 제품과 신제품 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동식 발전시스템도 개발했으며, 쿠바의 허리케인 피해 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쿠바에서 허리케인으로 발전 시설이 파괴되자, 우리는 두 대의 이동식 발전시스템을 무상으로 보내고, 테스트 후 쿠바는 400대를 주문했습니다. 이는 총 8억 불 규모의 수출이었고, 쿠바의 전력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쿠바 인력 400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육하고, 문화 체험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쿠바의 에너지 혁명을 일으켰으며, 쿠바 화폐에 "에너지 혁명"이라는 문구가 새겨지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는 저를 초청했으며, 쿠바와의 관계도 개선되었습니다.

일본 산다이 지방에 지진이 발생해 도쿄전력의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자, 저는 2000kW 이동식 발전 시스템을 기증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일본은 이를 수락했고, 60Hz 시스템을 사용하는 우리 발전 시스템을 50Hz로 변환해 제공했습니다. 일본 전력회사 사장은 환영식을 열었고, 저는 직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방문했습니다. 떠날 때도 태극기와 일장기를 흔들며 배웅을 받았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2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로써 일본의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삼성과 LG가 일본 가와사키의 로봇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액정판 운반용 로봇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삼성은 거절했지만, LG와 협력하여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48인치 액정판을 조립하는 데 4시간 걸리던 작업을 로봇으로 24초 만에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 후 삼성이 우리 제품을 요청했지만, LG가 허락하지 않아 납품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대만의 한 소규모 회사에 제품을 수출하게 되었고, 이는 2004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IMO(국제해사기구)가 배의 평형수 문제를 규제하기 전에, 저는 자외선 설비와 전기분해 살균 방식 두 가지로 이를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자외선 설비는 소규모 배에 효과적이고, 전기분해 살균 방식은 전기 전도성을 보완하여 효율을 높였습니다. 이 기술을 협력업체에 제공해 전 세계 시장에 납품하게 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지구 온난화 문제로 청정 재생 에너지를 연구하던 중 전 세계가 전기자동차로 전환될 것이라 확신하고 전기자동차를 개발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협력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2008년에 서울시 교통국장이 전기차를 타보고, G20 회의용 무공해 공용차로 전기버스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전기버스 개발에 착수하여 서울시 디자인과 한국파이바의 차대를 사용하고, 트랙션 모터와 배터리 등의 부품을 공급해 대우버스에서 조립했습니다. 밀양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성능을 확인한 후, 서울시 교통국은 20대를 주문했고, 이 전기버스는 G20 회의기간 동안 공용차로 사용되었습니다.

배의 추력 날개는 배의 회전류로 인한 에너지 손실을 회수하기 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입니다. 배의 양쪽에 날개를 설치하여 유입된 물의 양력에서 추력을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실험결과 6.4%의 효율 향상을 확인했습니다. 독일의 하파그로이드 사장에게 제안하여, 독일 선박연구소 HSVA에서 테스트를 거친 후 채택되었습니다. 이 날개는 큰 효율 향상을 이뤄냈으며,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도전과 실험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조류 발전은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고 청정 재생 에너지를 제공하는 중요한 기술입니다. 해양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울돌목, 장죽수도, 거차수도, 맹골수도, 황간수도 등의 조류는 대규모 발전소에서 원자력 발전소 5개 이상의 전력 생산이 가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류 발전은 태양광이나 풍력과 달리 발전 시간과 양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어 경제적이며, 댐 건설 없이도 필요에 따라 발전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기술이 국내에서 발전되어 세계 시장에 진출하면 국가 경제와 국익 성장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해양에서의 조류 발전을 위해 튼튼하고 진동을 줄이는 임펠라 설계와 흡음 링을 활용하여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과학기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과학기술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가 옛날에도 놀라운 과학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혁신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과학기술을 통해 얻은 교훈과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국가 경제와 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가 필요합니다. 과거의 실패에서 배워 미래의 성공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인도까지 정복하면서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100개 이상 세웠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이집트 나일강 하류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뿐입니다. 그곳에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공학자들은 천 년 전부터 12마디로 된 끈을 갖고 다녔습니다. 피라미드를 지을 때, 3변, 4변, 5변의 길이로 직각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피타고라스 정리, 즉 3, 4, 5 삼각형의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들은 피타고라스보다 훨씬 전에 이 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3,700년 전 윈드 파피루스라는 책에 원의 넓이를 원의 지름에서 9분의 1을 빼서 구하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계산해보면 원주율이 약 3.16으로 나옵니다. 현대의 원주율 3.141592와 비교해도 놀라운 정확도입니다.

이집트의 태양력은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7월을 "줄라이"로,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8월을 "옥타버"로 명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12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셉템버는 7월을, 옥토버는 8월을, 노벰버는 9월을, 디셈버는 10월을 의미했으나, 후에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의 과학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업적은 현대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었고, 우리는 이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이집트의 강변에서 나오는 파피루스라는 풀을 껍질을 벗기고 꽉꽉 눌러서 만든 종이에 기록한 문서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사막에 약 500m 간격으로 높은 기둥 두 개를 세우고, 그 기둥의 그림자 각도를 재어 지구의 둘레를 계산했는데, 그 값이 현대의 계산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리스에서는 피타고라스, 플라톤, 유클리드 등이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수학자이자 과학자였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자판기, 기압계 같은 장치들뿐만 아니라, 전기 엔진, 스팀 터빈(최대 15,000rpm으로 회전하는 스팀 터빈)도 존재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수천 년 전에도 과학기술이 매우 발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우 교수는 "경제의 발전은 자본 투자보다는 기술적 진보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는 이 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뉴욕대의 폴 로머 교수는 "기술의 성장이 경제 성장을 좌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내생적 성장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연구는 경제 성장에 있어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들은 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모여 국가 경쟁력 결정 요소와 국가 경제력 결정 요소에 대해 논의합니다. 이 자리에서 기술 혁신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됩니다. 과학기술은 국가의 경쟁력과 경제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입니다.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국가의 미래를 밝히는 길입니다.

 

3. [행사]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 민계식_5(민계식 유공자).jpg 이미지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과학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은 예술이나 다른 분야와 달리,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신 적 있습니까? 과학기술은 항상 발전만 합니다. 오늘 발전한 기술이 내일 더 발전하고, 그 다음날 또 발전합니다. 과학기술은 명예이지만, 기술은 권리입니다. 요즘은 아이디어에도 지식재산권이 부여됩니다.

또한, 기술에는 고전이 없습니다. 오늘 내가 놀라운 기술을 개발했지만, 내일 더 나은 기술이 개발되면 오늘의 기술은 쓸모가 없어집니다. 기술에는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이 없습니다.

산업별로 기술의 본질적 속성도 다릅니다. 전자산업, 기계산업, 토목산업, 건설산업, 조선해양산업 등 각 산업마다 기술의 속성이 다릅니다. 이를 이해해야 산업과 기술, 제품과 금융의 경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각 산업의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둘째, 기술의 경계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오늘날의 기술 전쟁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합니다.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입니다. 산업체에서의 연구개발(R&D)은 경영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영에는 흑자와 적자가 있지만, 기술은 항상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기술에는 후퇴가 없고, 고전도 없습니다. 기술력이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는 경영자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기술자이자 경영자로서 제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만약 경영자가 기술을 잘 모른다면, 기술을 잘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큰 리더십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군 출신 대통령을 제외하고, 장관에게 업무를 위임하는 대통령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일은 전문성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효과적인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권한 위임입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산업체의 R&D 정책에서는 기술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이 더 중요합니다. R&D가 아니라 R&BD, 즉 연구와 비즈니스 개발이 되어야 합니다. 팔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객과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R&D, 나아가서 시장을 창출하는 R&D가 필요합니다.

저는 불황일 때 새로운 것을 만들어 그 필요성을 강조하여 불황을 타개해왔습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최고의 기술이 아니라 최적의 기술'입니다. 이는 'Most Advanced Yet Acceptable', 즉 매우 발전된 기술이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콩코드 항공기는 기술적으로 매우 앞서 있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개발 중인 초음속 여객기는 콩코드보다 느립니다. 또, 마우스는 요즘 PC 사용에 필수적이지만, 처음 개발된 1965년에는 쓸모가 없어서 잊혀졌습니다. 이는 'Most Advanced Yet Acceptable'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세계 기술시장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세계 최초(First)와 세계 최고(Best)가 필요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를 넘어 'World-First'를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이를 충족하지 않으면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접근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혁신, 그리고 시장의 요구에 맞는 최적의 기술 개발이 필요합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전후로 과학기술을 존경심에서 받아들이고 이를 경제발전에 활용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자세 때문에 우리는 세계적인 수준의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초과학 기술이나 원천기술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고도성장을 못합니다. 예전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7% 이상의 성장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3%도 좋고 4%도 좋으니 지속적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가 얘기했습니다. 또, 제조업의 혁신은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입니다. 제조업의 혁신은 곧 기술혁신입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초연구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정부, 산업, 학계 모두가 협력하여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기초과학 기술을 강화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을 보유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단순히 경제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국가는 기술 개발 정책을 잘 세우고, 기술 개발을 크게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박리다매 방식으로 많이 팔지만 이익이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 조선일보에 따르면, 삼성은 애플보다 스마트폰을 1억 대나 더 팔았지만 이익은 삼성이 16%이고 애플이 84%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도 명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종속되어 위험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독일처럼 세계적인 강소기업, 즉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여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직접 해외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강력히 건의했으며, 지금도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은 경제 개발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도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의 주 역할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과학기술인의 사명과 역할은 크게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인은 과학기술 문화의 큰 틀에서 안목을 넓히고, 과학기술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며, 그러한 국가적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앞장서야 합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은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기여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인은 이러한 역할을 인식하고, 전 국민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통합적인 접근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과학기술은 직접적으로 국가의 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 인프라 구축, 안전 문제, 환경 문제, 기후 문제, 안보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제적으로도 국제회의에서 국가를 위해 과학기술의 타당성을 당당히 주장하고 달성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국민 행복에 기여하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3. [행사] 석학 커리어 디시전스 민계식_6(민계식 유공자와 배우자).jpg 이미지입니다.

[민계식 유공자(왼쪽)와 배우자]

과학기술의 가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을 인류의 관점에서 승화시켜 나가야 인간다운 미래 사회가 될 것입니다. 요즘 가끔 과학기술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학기술이 너무 발전하면서 우리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AI의 발전은 앞으로 20년, 30년 후에 인간과 AI 로봇 사피엔스가 공존하는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AI 로봇 사피엔스는 기억력, 계산력, 인지력, 노동력 등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월등히 우수합니다. 이런 시대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대책을 철저히 세우고, 교육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과학기술인은 하나의 과학기술 지식과 99가지의 사리 깊은 현실 인식을 갖춘 사람입니다. 과학기술인은 인문학과 문화에 대한 소양도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인이 과학기술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치, 사회, 행정, 문화, 언론 등 각계각층에 진출하여 정책도 세우고, 국민들에게 과학적인 마인드를 고취하는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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