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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기술유공자 인터뷰_한상기 전 서울대학교 교수 (전 국제열대농학연구소 부장)

작성일
2024-06-18
조회수
4,008

아프리카의 주식인 슈퍼 카사바의 육종과 보급

카사바 보급을 통해 나이지리아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 농학자

 

2. [인터뷰] 한상기 유공자 인터뷰_1(한상기 메인 사진).JPG 이미지입니다.

 

한상기 박사는 23년간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식인 카사바, 얌, 식용바나나 등을 품종 개량하여 아프리카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한상기 박사가 품종 개량한 식물들은 아프리카 전역에 증식·보급되어 지금까지 아프리카 사람들의 굶주림을 해소해 주고 있다.

한상기 박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식물 유전육종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 농과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안정된 국립대 교수직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소 초빙 제안까지 뿌리치고 오로지 식량난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하여 1971년에 낯설고 척박한 땅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나이지리아 국제열대농학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처음 주어진 임무는 ‘카사바 육종연구’였다.

당시 카사바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물로 그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작물이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식량작물로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1973년 카사바에 박테리아병과 바이러스병이 발생하여 아프리카 전역에 기근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 식민지 종주국들이 환금성 작물인 고무, 코코아, 땅콩, 면화만 집중적으로 연구하였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요 식량작물인 카사바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는 카사바 병에 대한 저항성을 갖은 유전자원을 찾아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카사바 원산지 브라질에 가서 카사바 종자와 야생종 카사바 종자를 얻었고 그것을 나이지리아 재래종 카사바에 교잡하여 교잡종을 얻어내 병에 대한 저항성도 좋고 수확량도 우수한 슈퍼 카사바 품종을 개발하게 되었다.

“환경파괴로 인한 온난화로 전 세계의 식량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는 나라가 많아요. 세계적인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국제적 협력과 노력이 절실합니다. 지금은 식량이 풍부하지만 미래를 위해 미리 대비하여야 합니다.”

한상기 박사는 오로지 아프리카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젊음을 바쳤다. 단순히 품종 개량에만 그치지 않고 농학인을 배출하여 지속 가능한 아프리카 농업 발전에 이바지한 한상기 박사. 식량난을 해결한 공로로 그는 ‘농민의 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추장으로 추대되었고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그를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부르며 기리고 있다.

 

2. [인터뷰] 한상기 유공자 인터뷰_2(한상기 추장 관련).JPG 이미지입니다.

 

Q. 농학을 선택한 계기와 농학 중 식물육종학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금강유역의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장마가 지면 강물이 범람하여 농민들이 애써 심은 벼가 침수로 다 죽는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자랐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저를 농학으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중학교 때 평소 존경하던 우장춘 박사의 식물유전육종 연구활동을 접하였고 진로를 식물육종학으로 굳히게 되었습니다.

 

Q.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1971년 나이지리아 국제열대농학연구소로 향하셨습니다. 어떤 목적과 생각을 가지고 가신 건지 궁금합니다.

A. 당시 저에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식물육종연구소에서 초빙 제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진 연구소 대신 아프리카를 선택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식인 카사바, 얌, 고구마 등 열대구근작물에 대해 연구하여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해 멕시코에 설립된 자매연구소에서 내병다수성 밀을 육종해 인도와 파키스탄에 보급하여 그 나라 식량안전에 기여한 노만 볼로그 박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을 보고 저도 농학으로 인류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Q. 연구소의 첫 임무가 카사바 육종연구였습니다. 당시 처음 접한 식물이라고 하셨는데 끝까지 연구를 이어가면서 성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연구소에 갔던 첫해 카사바 연구를 시작해 5년 만에 슈퍼 카사바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재래종 100여 개를 수집했고 재래종이 카사바 모자이크 바이러스 병과 박테리아 병에 약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카사바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창궐해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식량난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유전자원을 찾아야 했죠. 그래서 카사바의 원산지인 브라질의 농업아카데미 연구소에 무작정 찾아갔고 카사바 종자와 야생종 카사바 종자를 얻을 수 있었어요. 그 종자를 발아시켜 실생을 얻고 그것을 나이지리아 재래종 카사바에 교잡하여 병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계통을 선별해 슈퍼 카사바를 만들어냈습니다.

 

Q. 내병다수성 카사바 품종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지역 주민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더욱 어려우셨다고요. 이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나이지리아는 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보급 문제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개량한 품종을 농민들이 심지 않으면 연구가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한 가지 방책으로 트럭에 개량한 카사바를 한 트럭 실고 전통시장으로 가서 농민들에게 소개하였습니다. 또 다른 방책으로는 트럭에 싣고 다니다가 카사바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 땅에 신품종을 꽂고 다녔어요.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신품종을 널리 보급하긴 역부족이었죠. 그 때 지역 주민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석유회사 Shell&BP의 주민 지원 프로그램 부장이 지역 주민들이 카사바가 죽어가 식량난을 겪고 있는 걸 보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슈퍼 카사바의 소식을 들은 거죠. 개발한 슈퍼 카사바를 주면 대대적으로 증식하여 지역 농민들에게 보급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지역 농민들과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던 석유회사 덕분에 짧은 기간에 나이리지아 전역으로 슈퍼 카사바 품종이 보급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준 개량 내병다수성 카사바 품종은 나이지리아만 해도 현재 500만 정보에 재배되고 있고 인근 나라 카메룬, 베낭, 토고, 가나에서까지 재배되고 있습니다.

 

Q. 품종 개발에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인이 스스로 자력갱생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에 힘쓰셨습니다.

A. 품종을 개발해 보급함으로써 당장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아프리카 농학 발전이 지속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미국 원조처에 추천하여 3~4백 불의 원조를 받아 카사바 연구 프로그램을 지원하였고 40여명의 석·박사와 1만여 명의 농촌지도자를 육성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개량 내병 다수성 카사바를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약 50여 년간 계속해서 내병성이 유지되어 농민들에 의해 재배되고 있습니다. 

 

2. [인터뷰] 한상기 유공자 인터뷰_3(한상기 훈련자 명단).JPG 이미지입니다.

[한상기 유공자 700여 명의 훈련자 명단]

 

Q. 아프리카 식량난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농학인으로서 느끼시는 보람과 자부심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처음 아프리카 가기로 결심했을 때 ‘일왕불퇴(一往不退) 일진불퇴(一進不退)’각오로 떠났습니다. 한 번 갔으면 물러서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농업전심(農業專心) 원칙재천(原則在天)’, 즉 ‘농업을 열심히 하면 원칙이 하늘에서 내린다’라는 마음으로 연구에 임했고요. 어렵고 험난한 길이었지만 끝까지 연구에 매진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마음가짐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명성이나 업적도 중요하지만 인류의 삶에 이바지했다는 보람이 큽니다.

 

Q. 후학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가장 큰 유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 대국이고 과학기술 대국입니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했듯이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과학기술이 낙후된 나라를 지원하여 성장을 돕는 일에 우리의 축적된 힘을 썼으면 합니다. ‘가교사해(架橋四海)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 바다에 다리를 놓아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힘들었을 때 원조를 받았듯이 어려운 나라를 돕는다면 복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A. 사람은 사람이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제 일생의 업적과 성취가 저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를 만들어주신 은사님, 부모님, 무엇보다 저를 위해 23년간 아프리카에서 고생하면서 뒷바라지해준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된 것은 제 일생의 가장 귀한 영예입니다. 감사합니다.

 


 

2. [인터뷰] 한상기 유공자 인터뷰_4(한상기 유공자).JPG 이미지입니다.

 

한상기 박사는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나이리지아 소재 국제열대농학연구소(IITA) 구근작물 개량 소장보로 재직하며 카사바, 얌, 고구마, 식용바나나 등의 품종을 개량하여 아프리카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기네스 과학공로상을 수상했고 나이지리아 이키레 마을 추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는 40여 명의 아프리카 농학도들이 석·박사 학위를 받게 도와주었고 단기 과정을 통해 각국에서 온 700여 명의 농업인들을 훈련시켜 보내 그들이 고국에서 1만여 명의 현지 지도자를 배출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들을 통해 병충해에 강하고 소출이 많은 개량 신품종을 아프리카 전역에 보급한 덕분에 그가 개량한 카사바 품종은 현재 41개 아프리카 국가에 보급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구마 품종은 66개 국가에, 얌 품종은 21개 국가에, 식용바나나 품종은 8개 국가에 보급되어 지금까지 아프리카 사람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국제구근작물학회 회장, 세계식량기구(FAO) 고문, 스웨덴 국제과학재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영국 기네스 과학공로상, 영국 생물학술원 펠로우상, 미국 작물학회 펠로우상, 브라질 환경장관 공로상,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한 그는 농학도로서 인류의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에 식용작물 연구와 농업교육의 씨를 뿌렸다. 학문적 탐구에도 열정을 다하며 160편의 논문을 세계 과학지에 발표하였고 나이지리아 이키레읍에서 ‘농민의 왕’이라는 칭호의 추장으로 추대되어 아직도 아프리카인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한상기 과학기술유공자 인터뷰 바로가기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