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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기술유공자 인터뷰_김성호 UC Berkeley 명예교수

작성일
2023-06-16
조회수
14,337

구조 생물학·단백질체학·유전체학의 세계적 석학

유전자 구조 및 암 원인 규명의 새지평을 개척하다

 

구조 생물학·단백질체학·유전체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우뚝

국제 과학계에서 주목한 과제, 전달RNA 구조연구 선도적으로 수행

단백질구조연구로 암의 발병 원인 규명 및 항암제 개발

2. 김성호 과학기술유공자 인터뷰.png 이미지입니다.

김성호 교수는 구조 생물학·단백질체학·유전체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1960년대 생물학 혁명이 일어날 당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이끌려 DNA 정보로부터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RNA 구조 분석 연구에 나섰다. 그 결과 전달RNA의 3차원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히고 암 관련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선구적으로 규명하는 등 유의미한 과학적 성취를 이룩하며 세계적인 석학으로 우뚝 섰다.

김성호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63년 피츠버그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결정학 연구자 조지 제프리(George A. Jeffrey) 교수를 만나 X선 결정 구조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66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MIT의 알렉산더 리치(Alexander Rich) 연구실의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이를 기점으로 김성호 교수는 전달RNA 구조연구를 선도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작은 ‘가능성’이란 씨앗이 ‘확신’으로 발아하기까지, 그는 숱한 연구를 이어왔다.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혁혁한 성과를 하나둘 달성해갔다.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전달RNA의 3차원 구조를 가장 먼저 규명한 것을 대표적인 성과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1960~70년대 전달RNA 구조연구는 국제 과학계에서 치열하게 주목하고 있던 과제였다. 미국의 MIT 리치 그룹을 비롯해 프린스턴의 프레스코 그룹, 영국의 클러그 그룹 등이 우선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그를 제1 저자로 한 연구논문이 1973년, 수정 보완한 연구논문이 1974년에 세계적인 과학저널 에 실리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는 DNA의 유전정보가 RNA를 거쳐 단백질로 발현되는 모든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과로 남았다.

1988년 암을 일으키는 중요 단백질의 하나인 라스(ras)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고 이 단백질을 통해 암의 발병 원인을 밝혔다. 1993년에는 세포주기에 관여하는 Cyclin-dependent kinase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규명하면서 암구조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이 밖에도 Scaffold(Fragment)-based drug discovery라는 개념을 신약 개발연구에 도입함으로써 소요 시간을 단축하고 개발 확률을 높였고, 예일대 조셉 슐레징어와 피부암항암제를 개발하는 데 이르렀다. 이 개념은 암 관련 단백질을 타겟으로 하는 항암제인 유방암 치료제와 백혈구감소증 치료제 개발에도 기여했다.

2000년 캘빈 연구소 및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구조유전체학 센터를 이끌며 구조단백질체학 연구를 선도했다. 5백여 개의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면서 단백질의 구조가 몇 개의 구조적인 단위의 조합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단백질구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나아가 인공지능과 게놈 해독기술로 9천 명의 미국 백인 게놈 데이터를 분석한 뒤 주요 암 20종의 발병 원인을 각각 유전적 원인과 후천적 원인으로 분류해 밝혔다. 이는 게놈 해독으로 어떤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지, 어떤 예방조치를 취할지 등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했다.

“과거 화학과 재학 시절, 생물학 연구를 하겠다는 말을 하니 모두 힘들 거라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분야에 자꾸 호기심이 가고 끊임없이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당시 포기하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알고 싶은 것’에 묵묵히 도전했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생물학에 AI와 빅데이터를 접목한 새로운 연구를 수행 중이다. 다양한 융합 연구를 통해 과학 기술의 진폭을 확장하며 인류에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후대 학자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Q. 평생을 바쳐 생물학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처음 과학기술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어렸을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시를 쓰는 행위가 진리를 찾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당시 서구를 통해 철학과 심리학 서적이 유입됐고,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시와 심리학, 철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과학의 그것과 같다고 느꼈습니다. 방식과 수단은 다르지만 진리를 찾아가는 목적은 별반 다를 게 없었지요. 그 후 과학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면서 서울대 화학과를 입학했습니다.

 

Q. 많은 분야 중 구조 생물학에 집중하시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A. 화학과에서 물리화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생물학 분야에서 커다란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입체구조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새로운 가능성들이 발견되고 있었는데, 자연이 지닌 ‘대칭(Symmetry)’을 취급하는 학문에 이끌렸습니다. 분자구조의 대칭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샘솟았습니다. 자연이 물질을 만들 때 어떤 대칭을 사용하는지, 대칭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새로운 분야에 다가가고 싶다는 열정으로 구조 생물학에 매진했습니다.

 

Q. 서울대학교 졸업 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수학하셨습니다. 당시 유학 시절에 대한 소회가 궁금합니다.

A. 운이 좋았던 걸까요. 피츠버그대학에서 구조 결정학을 다루는 연구소가 생겼어요. 그곳에 들어가서 세계적인 레벨의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생물학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매료됐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물학에서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심이 점점 커졌습니다. 연구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좋은 결과를 창출했어요. 학문의 성격이나 연구 방식이 다행히 제 성정과 잘 맞아서 그런지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지요.

 

Q. 다양한 과학적 성취와 업적을 통해 생물학 발전에 기여하셨습니다. 연구를 이어갈 때 어떤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나요?

A.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함께하면서 항상 새로운 질문을 하는 습관을 익혔습니다. 어떤 연구이든 재래식 연구를 끝 지점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삼고 늘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답을 창출하는 거죠. 기존에는 도저히 해석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질문의 실마리를 찾고 마침내 결과를 찾아내는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만큼 보람찹니다. 틀렸던 것을 바로잡고 정답을 찾아가면서 점차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자세와 관점을 이어왔습니다.

 

Q. 연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A. 연구를 이어오는 동안 실망하거나 답답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호기심’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 또 따른 호기심을 마주할 때의 희열과 즐거움은 또 다른 열정을 솟아나게 했지요. 이 과정이 마치 등산 같달까요. 등산로가 없는 산을 힘들게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눈이 탁 트입니다. 저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다음 산이 눈에 들어오고, 또 다른 산을 향해 길을 개척하기 시작하죠. 저 위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연구에 정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

 

Q. 연구소를 이끌며 다수의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교육자로서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학생들을 이끄는 것보다 그 학생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개개인은 누구나 강점과 관심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학생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파악한 후, 자율성을 부여했습니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거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의견을 주고받곤 했습니다. 이때 생각지도 못한 연구 성과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 어떤 한계나 제한 없이 다양한 사고와 시각을 믿고 맡기는 방향을 이어왔습니다.

 

Q. 현재 후배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떠신지요?

A. 훌륭한 교육자란, 제자들이 자신을 뛰어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연구소에서 함께한 이들이 연구소를 나가서도 끊임없이 역량을 개발하고 또 다른 분야를 개척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제 나이는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게 아주 큰 즐거움이자 보람이죠. 그리고 저는 현재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후배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제자를 통해 저 또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여전히 배우는 일에 있어서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Q. 과학기술인이 지녀야 할 필수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과학적인 훈련이 제대로 된 상태에서 항상 의문을 가지는 습관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문제이든 기존에 있던 증거를 찾아서 대입하기보다 새로운 진리를 묵묵히 찾아나가길 바랍니다. 내가 지닌 의문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답을 찾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특히 역사가 긴 분야는 이미 연구된 것이 많기에 질문의 수가 적습니다. 새로운 분야는 질문의 수가 무궁무진하지요. 여기에서 오는 즐거움이 클 거예요. 무엇보다 원하는 연구 분야가 나의 성격이나 체질에 맞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Q. 우리나라 과학기술-생물학계가 나아가는 올바른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한국에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똑똑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 학생들이 자신의 호기심에 따라 연구를 이어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국가 장려 정책이나 트렌드에 맞추기보다 자신이 진심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에 주저 없이 뛰어들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성공하는 이도 실패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런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이 많은 경우의 수에서 비로소 유의미한 연구 성과가 나오게 마련이지요. 학계 전반적으로 학생 개개인의 호기심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랍니다.

 

Q. 앞으로 과학기술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와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지금 과학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혁명을 맞았습니다. 유전체학의 발달로 단 시간에 생명체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가 모였지만, 이 수많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법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또한 최근 AI의 발달로 인간의 두뇌 세포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영역을 접목해 연구하는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새로운 접근법으로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될 겁니다. 아직 그게 무엇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생물학과 정보학의 연계를 통한 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나의 목표입니다.

 

Q.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신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A. 한평생 중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늘 ‘나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 몸과 마음에 깊숙이 새겨져 있습니다. 조국이 내게 어머니라면, 그간 쌓아온 커리어는 아버지 같은 느낌이에요.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고 보니,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께서 지금까지 칭찬을 아끼시다 불현듯 “그동안 잘해왔다”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훌륭한 과학기술유공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조국이 이렇게 나를 품고 있구나’란 생각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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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교수는 전달RNA의 3차원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히고 암 관련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선구적으로 규명한 세계적인 구조생물학자다. 구조 생물학·단백질체학·유전체학을 둘러싼 호기심을 바탕으로 혁혁한 과학적 성취를 일구며 관련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60년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김성호 교수는 1963년 피츠버그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X선 결정 구조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1966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전달RNA 구조연구를 앞장서서 수행했다. 그 결과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전달RNA(tRNA)의 3차원 구조를 가장 먼저 밝혀냈다. 1988년에는 라스(ras)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고 이 단백질을 통해 암의 발병 원인을 밝혔다. 이 밖에도 세포주기에 관여하는 Cyclin-dependent kinase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규명하면서 암구조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가 하면, Scaffold(Fragment)-based drug discovery라는 개념을 신약 개발연구에 도입해 항암제 개발에도 기여했다. 현재는 AI와 빅데이터를 연계한 연구를 통한 새로운 시도를 잇고 있다.

지금까지 18편, 13편, 37편 등 총 355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15개의 국제특허를 획득했다. LG Biotech을 비롯해 20여 개가 넘는 한국 및 미국 바이오·제약기업의 기술자문을 제공했다. 1994년 미국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와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의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한국 호암상, 일본 Princess Takamatsu상, 미국 로렌스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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