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계산기, 컴퓨터, 전자교환기의 국산화로 한국 전자산업의 고도화에 기여
TDX, 4M D램, CDMA 기술개발사업을 매개로 대형 IT 국책사업의 토대를 구축
故 안병성(安柄星)
前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책임연구원
(1935~2010)
- 학력사항
-
- 경력사항
-
-
-
-
1977 ~ 1981
한국통신기술연구소 제2부소장
-
1981 ~ 1984
대영전자공업주식회사 부사장, 연구소장
-
1984 ~ 1998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단장, 선임연구위원
-
- 포상
-
안병성 박사는 불모의 땅에서 전자통신기술을 개척한 선구자로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통신기술연구소,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등을 두루 거치면서 전자계산기 국산화, 컴퓨터 국산화, 전자교환시스템 개발 등을 주도했고, TDX 기술개발사업, 4M D램 공동개발사업, CDMA 기술개발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탁상용 전자계산기의 국산화와 수출에 기여
1935년에 태어난 그는 인하공과대학 전기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1962~1970년에는 한국원자력연구소 전자공학연구실에서 연구관을 지냈고, 1970~1977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 근무하면서 방식기기연구실(후신은 전자공학부) 실장을 맡았다.
그는 1971년에 전자계산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탁상용 전자계산기, 포켓형 전자계산기, 프린터형 전자계산기 등을 개발했던 것이다. 특히 탁상용 전자계산기는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지에 10만여 대가 수출되었으며, 미국의 Consumer Report1973년 6월호에서 다른 15종의 전자계산기와 비교되기도 했다. 그는 전자계산기의 개발과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1972년 대통령 표창과 1974년 3․1문화상 기술상을 받았다.
최초의 국산 컴퓨터 개발과 사설전자교환기 개발을 주도
그는 197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컴퓨터인 ‘세종 1호’를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세종 1호는 당시 미니급 컴퓨터가 보유한 모든 기능을 갖춘 것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국내 연구진에 의해 자체적으로 개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세종 1호의 개발이 처음부터 컴퓨터를 국산화하려는 계획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72년에 청와대는 중앙정보부와 연결되는 핫라인용 사설전자교환기(Private Automatic Branch eXchange, PABX)의 개발을 KIST에 의뢰했고, 이를 계기로 안병성을 팀장으로 하는 전자교환시스템팀이 구성되면서 소위 ‘메모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KIST 연구진은 ‘노바 01’ 환경에서 전자교환시스템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지만, 컴퓨터가 소프트웨어의 핵심인 시분할 기능을 지원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바 01과 호환되는 컴퓨터 개발이 추진되었고, 그 결실이 세종 1호였던 것이다.
KIST는 세종 1호와 연결된 전자교환시스템을 ‘KIST-CCSS’로 명명했으며, 미국 GTE의 지원으로 1975년에 KIST-CCSS를 보완한 ‘KIST 500’을 발표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그는 “분산배정법에 의한 시분할통신계의 용량증가에 관한 연구”(1975)로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1977년에는 GTE가 세종 1호와 KIST 500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삼성GTE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1982년에는 한국전자통신과 삼성GTE가 합병되어 삼성반도체통신이 출범했다. 세종 1호는 삼성반도체통신이 1980년대 중후반에 독자모델로 개발한 ‘삼성 슈퍼마이크로’ 시리즈 컴퓨터의 기술적 토대가 되었으며, KIST 500은 이후에 지속적으로 개량되어 1977~1991년에 추진된 전전자(全電子)교환기 기술개발사업(일명 ‘TDX 기술개발사업’)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TDX, 4M D램, CDMA 기술개발사업의 기초를 마련
안병성 박사는 1977~1981년에 한국통신기술연구소의 제2부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전전자교환기 개발사업에 필요한 기초연구를 주관했다. 그는 1981~1984년에 대영전자공업주식회사의 부사장과 연구소장으로 활동한 후 1984~1998년에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에서 일했다. 1986~1989년에는 ETRI가 주관하고 삼성전자, 금성반도체, 현대전자 등 반도체 3사가 참여하는 초고집적 반도체기술 공동개발사업(일명 ‘4M D램 공동개발사업’)이 전개되었는데, 그는 개발계획 보고서를 작성하고 사업자를 관리하는 업무를 주도했다. 또한 ETRI는 1989~1996년에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개발사업(일명 ‘CDMA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했으며, 그는 1993년까지 무선통신개발단 단장을 맡아 이동통신 기술개발에 관한 기초연구를 수행하면서 사업자를 선정하는 작업을 주관했다. 사실상 TDX 기술개발사업, 4M D램 공동개발사업, CDMA 기술개발사업은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제공한 주요 국책사업이라 할 수 있는데, 안병성 박사는 세 사업의 초창기에 모두 참여하여 해당 사업의 기초를 닦는 데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