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스토리 뉴스

스토리 뉴스

한국 물리화학을 국제 수준으로 발돋움시킨 화학자

교차작용상수 개념 통해 유기반응의 전이상태 구조해석 이론 정립
530편의 논문 출간, 81명 석박사 인력 양성과 연구그룹 형성
국제학술지 창간, 최초의 SCI 등록으로 화학 연구의 국제화 선도

 

한국 물리화학을 국제 수준으로 발돋움시킨 화학자
故이익춘
교차작용상수 개념 통해 유기반응의 전이상태 구조해석 이론 정립
530편의 논문 출간, 81명 석박사 인력 양성과 연구그룹 형성
국제학술지 창간, 최초의 SCI 등록으로 화학 연구의 국제화 선도 학력
1946-1956 서울대학교 화학과 졸업
1959~1960 영국 버밍엄대학 대학원 이학석사(화학)
1960~1962 영국 런던대학 대학원 이학박사(화학)

경력
1962~1965 원자력연구소 연구관
1965~1973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 부교수
1973~1994 인하대학교 이과대학 화학과 교수
1973~1981 인하대학교 이과대학 학장
1991~1992 대한화학회 회장
1992~1994 인하대학교 대학원장

포상
1982 대통령 표창
1987 제1회 춘강상
1993 서울시 문화상
2005 한국과학기술한림원상
2012 3.1문화상 “인하대에 화학과가 설립될 때부터 재직한 인연으로 강단에서는 물러났지만 학과와 후배들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훌륭한 후배들이 계속 나와 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노후 자금을 아껴 쓰기로 하고 발전기금을 마련했다. 화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을 위해 써달라.”
(중앙일보, 이익춘 전 인하대 교수 제자들 위해 1억 원 기탁, 2005.09.13.) 지난 2006년, 70대의 전직 교수가 인하대학교 화학과 후학들을 위해 1억 원을 기탁했다. 11년 전 정년퇴직한 곳이었지만, 마음은 늘 그곳에 있었다며 제자 사랑을 실천한 그는 우수 연구성과를 비롯 후학양성, 국제학술지 발간 등을 통해 한국의 물리화학을 일약 국제 수준으로 발돋움시킨 선도적인 화학자였다. 늘 검소한 생활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 온 그는 바로 연구벌레라 불렸던 이익춘 교수다. 이익춘 교수는 1929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1956년 졸업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버밍엄대학(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석사학위를 1960년에 받았고, 2년 후에는 런던대학(University of London)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에는 원자력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응용화학과 교수와 인하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봉직했다. 이 교수는 우수한 논문의 출간에 있어 선구적 역할을 했다. 1960년대 그의 주된 연구주제는 유기화학 반응속도론이었다. 유기치환반응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분자궤도함수론을 이용한 연구를 해 나갔다. 1963년부터는 영국 유학 시절의 동료들과 공동 연구해 미국화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 연구 환경이 열약한 시절이었지만, 그의 연구에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국내에서 수행된 연구가 해외 유수 학술지에 실리는 것이 매우 드물었던 당시, 그는 서울대 응용화학과 대학원생 황보명환과 함께 원자가 이성질(valence isomerism)에 관한 논문(Myung-Hwan Whangbo: Ikchoon Lee, J. Am. Chem. Soc. 1971, 99, 2330)을 세계적인 학술지인 Journal of American Chemical Society의 Communication 부분에 발표하며 연구의 우수성을 입증받기도 했다. 학문적 업적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인하대 화학과 교수들, 대학원생들과 함께 유기화학반응 메커니즘에 관한 많은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집단을 형성해 나갔다. 여기에서 나온 그의 학문적 업적은 1980년 후반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했는데,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인 J. Am. Chem. Soc., J. Phys. Chem., J. Org. Chem., J. Comput. Chem., J. Chem. Soc. 등에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며 국내 기초과학 연구의 활성화와 국제화를 선도했다. 특히 그가 제안한 교차작용상수(cross-interaction constant) 개념은 유기반응 전이상태의 구조를 해석하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는 전이상태에서 반응중심에 전자 섭동을 일으킬 수 있는 두 가지 치환기를 동시에 변화시키는 반응모델을 설계하고 두 치환기의 전자 상호작용이 방정식으로 일반화됨을 보였다. 또한 교차작용 상수가 유기반응 메커니즘을 판별하고 전이상태를 해석하는 기준이 됨을 밝혔다. 치환기의 상호작용에 대한 개념 이론은 일반화되어 고급 유기화학 교과서(Neil Isaacs, Physical Organic Chemistry, 2nd ed.)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는 후학 양성과 화학계의 연구 수준 향상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1973년 인하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후 1994년까지 화학과 교수를 지낸 그는 대학 초창기 이과대학 학장을 맡아 이과대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기초과학연구소 소장과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기초과학 학문발전과 대학원 교육 및 연구 진흥에 크게 기여했다. 인하대 화학과 1회 졸업생이 배출될 때 대학원에 석사과정을, 그리고 2년 뒤에 박사과정을 개설하여 후속세대 연구자를 키우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엄격한 그의 지도로 31명의 박사와 50명의 석사가 배출됐는데, 현재 그의 제자들은 학계, 연구소 및 산업계에서 활약하며 학문 연구와 산업계 발전을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한국의 화학 연구가 국제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섰다. 교육과 연구로 바빴던 1980년대에도 대한화학회에서 영문학술지 Bulletin of Korean Chemical Society 창간을 주도했다. 이 학술지는 창간 이듬해인 1981년에 국내 학술지 가운데 처음으로 SCI에 등록됐다. 1991년부터는 대한화학회 회장, 대한화학회 국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차례로 맡아 학회의 발전에 힘을 보탰다. 그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국제저널 Journal of Physical Organic Chemistry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일생에 걸친 활발한 과학 활동 덕분에 그에겐 많은 영광의 순간이 따랐다. 1982년과 1994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87년에는 제1회 춘강상, 1993년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2012년에는 3‧1 문화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에 선출됐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논문을 5백 편까지 발표하고 싶습니다. 그의 별명은 ‘연구벌레’였다. 연구에만 몰입한다는 이유로 붙여진 별명이었다. 국제적으로 높게 평가된 유기반응 메커니즘과 전이상태 구조 규명 연구를 포함 530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퇴임 후에도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간 그는 교육과 연구에 있어서 양적, 질적 성취를 모두 이루며 후학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한국의 물리화학 연구가 도약할 수 있는 단단한 기초를 마련한 이익춘 교수. 학문 연구에서 타협하지 않고, 후학 양성에서 요령 피우는 법이 없었던 그의 학자다움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