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만들고 수많은 화학공학자를 양성한 과학자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그분은 바로 2017년 초대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된 이재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입니다.
3월 22일은 이재성 교수가 우리 곁을 떠난지 9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이재성(1924~2016) 교수는 한국에 구미식 화학공학 교육과정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자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4일 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안전한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부산에 피난 중이던 서울대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응용화학'을 답습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교수는 국내 최초로 서구식 화학공학 강의를 시작하며 향후 중화학공업 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전후 복구사업에 필수적이었던 비료, 시멘트, 판유리 등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화공엔지니어들이 양성되었고, 이들의 활약으로 정유 및 석유화학공업이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효자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교육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교수는 1959년 국산 무연탄을 원료로 인조석유 합성에 성공했으며, 1964년에는 의료용 마취제인 아산화질소의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1972년에는 알칼리 금속증기의 열전도도 측정 연구로 서울시 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1962년 한국화학공학회 창설을 주도하고, 43년간 서울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으로서 연구여건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켰습니다. 동남아시아 공학교육협회(AEESEA) 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하여 아시아 지역의 공학교육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이재성 교수가 심은 화학공학의 씨앗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화학공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중화학공업과 화학공학 교육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산업 발전의 혜택 속에는 이재성 과학기술유공자의 헌신과 열정이 깊이 스며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 이재성 유공자 소개 페이지 바로가기
이재성 유공자 소개 영상 바로가기

이재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65년 당시 한국화공기술연구소의 의료용 마취제 생산설비

제3회 아시아·태평양 화학공학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이재성 교수

1972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고 있는 이재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