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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충기 카이스트 명예교수

작성일
2020-04-20
조회수
110,048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전자공학자 김충기 카이스트 명예교수

반도체 연구를 국내에 정착시키고 관련 기술 개발을 이끈 1, 2세대 주역들을 키워내 국내 반도체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 교수는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되었다. 김충기 교수는 반도체 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전자공학자이자 반도체 비전을 전파해 지금의 반도체 강국이 있게 한, 한국의 반도체 신화를 써내려간 영웅이자 신화 그 자체였다.

 

김충기 카이스트 명예교수

 

국내 최고의 반도체 산업의 선구자이며 수많은 전문가들의 참스승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충기 교수와 故 이병철 삼성회장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참 스승이십니다.” 담백한 말 속에는 깊은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국내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가 꼽은 참 스승, 그가 바로 김충기 카이스트 명예교수다.

첨단 반도체 연구를 국내에 정착시키고 산업기술 개발을 이끈 대한민국 반도체 1, 2세대 주역들을 키워낸 한국 반도체의 '대부', 김충기 교수는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성방직의 섬유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 전자공학과에서 반도체 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그는 학구적인 모범생이었다.

잠자고 있던 그의 엔지니어 정신을 깨운 건 첫 직장이었던 페어차일드였다. 1970년대 당시 미국 최고의 반도체 기업 중 하나였던 페어차일드에 갓 입사한 신참내기였던 그에게 중요한 미션이 주어졌다. 반도체 핵심소자인 전하결합소자(CCD)를 개발하라는 임무였다.

“CCD는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부품입니다. 이를 이용하면 빛 정보를 화면에 표현해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었죠. 당시로서는 너무나 획기적이었던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CCD 연구에 참여한 그는 CCD 기초연구와 영상감지소자 기술을 기반으로 1973년 세계 최초로 500화소 CCD 선형 영상감지소자를 개발해냈다. 그는 동료들에게 CCD 교수로 불릴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1975년, 훗날 KAIST로 개편된 한국과학원이 문을 열자 그는 잘 나가던 페어차일드에서의 연구를 접고 귀국해 전기·전자공학과 교수가 되었다.

 

자신의 역량을 국내 반도체 발전에 기여한 한국 반도체의 대부

“개인적인 이유 외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기여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어요.” 당시 한국 정부는 반도체 공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체계적인 연구나 교육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김충기 교수는 3년에 걸쳐 미국 대학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반도체 집적회로 제작 설비를 설치했는데, 이로 인해 마침내 국내에서도 이론과 실습이 균형을 이룬 첨단 반도체 연구와 교육이 가능해졌다.

1980년대를 거치며 그의 연구실은 국내 반도체 기술 연구의 허브가 되었다. 1975년부터 2010년까지 그는 총 72명의 석사와 38명의 박사를 지도했는데 이들은 한국 반도체산업이 성장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전문가가 없던 시절, 김충기 교수는 연구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정확한 타이밍에 해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97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메모리 반도체와 반도체 소자를 핵심부품으로 쓰는 디지털 기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산업 초기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인력을 키운 그의 역할을 얼마나 큰 지를 잘 알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그를 한국 반도체의 대부라 부르는 이유다.

“대부라는 호칭은 부담스럽습니다. 다만 막 걸음마를 떼고 위태롭게 걷던 한국 반도체가 어느덧 높이 비상하며 세계를 호령하는 모습을 보니 꿈만 같습니다. 연구와 교육에 투자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한편, KAIST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 드라마 ‘카이스트’가 탄생한 배경에는 열정충만한 강의로 동기를 부여하는 김충기 교수가 있었다. 그의 명강의는 KAIST를 찾은 방송작가들을 감동시켰고 급기야 송지나 작가가 KAIST를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드라마 ‘카이스트’가 탄생했고, 학교관계자들을 비롯해 알만한 사람들은 드라마의 숨은 주인공이 김 교수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 드라마 소재가 되었을 정도로 빛나는 삶을 살아온 주인공. 자신이 지나온 길을 회상하던 김 교수는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에서 열정적인 학생, 촉망받는 연구자, 그리고 존경받는 스승이 되기까지, 김 교수에게 그 길은 의미있는 발걸음이자 즐거운 소풍으로 남은 듯했다.

≪김충기 유공자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Olfhh1epuh4